제2부 골조 세우기: 되풀이되는 것이 곧 구조입니다
제2부 골조 세우기는 여호수아부터 에스더까지 열두 권이며, 성경 5부 구조에서 기초 위에 뼈대를 올리는 자리입니다. 한 민족이 땅에 들어가 왕을 세우고 그 나라를 잃기까지 천 년이 여기 담깁니다. 제1부에서 놓은 기초가 실제 역사 속에서 무엇을 견디는지가 이 열두 권에서 시험받습니다.
골조는 무게를 아래로 내립니다
기초가 끝나면 골조가 올라갑니다.
골조는 건물의 뼈대입니다. 기둥과 보가 얽혀 층을 만들고, 그 위에 놓이는 모든 무게를 받아 아래로 내려보냅니다. 사람이 사는 자리는 벽 안쪽이지만, 그 벽을 서 있게 하는 것은 골조입니다.
그런데 골조 도면을 펴 보면 놀랄 만큼 단조롭습니다. 같은 기둥이 층마다 같은 자리에 서고, 같은 보가 같은 간격으로 걸립니다. 도면 몇 장을 넘기던 사람이 이게 다 같은 그림 아니냐고 묻습니다. 맞습니다. 거의 같습니다.
되풀이되는 것이 곧 구조입니다.
성경 5부 구조에서 제2부 골조 세우기는 여호수아부터 에스더까지 열두 권입니다. 이백마흔아홉 장에 한 민족의 천 년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열두 권을 읽다 보면 사람들이 똑같은 말을 합니다. 이게 다 같은 이야기 아닌가.
맞습니다. 거의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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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권이 세운 것
여호수아는 첫 층을 올립니다. 제1부의 마지막에서 모세가 넘긴 도면을 받아 실제로 땅을 밟는 자리입니다. 사십 년 동안 배운 것이 흙 위에서 통하는지가 여기서 판가름 납니다.
사사기는 그 층이 흔들리는 이야기입니다. 열두 사사가 나오는데, 그때마다 같은 네 마디가 되풀이됩니다. 백성이 어긋나고, 눌리고, 부르짖고, 건짐을 받습니다.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열두 번입니다.
룻기는 그 어수선한 시절 한복판에 놓인 작은 이야기입니다.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한 집안 이야기이고, 이방 여인 하나가 시어머니를 따라 들어오는 이야기입니다. 이 작은 이야기의 마지막 줄에 다윗의 이름이 나옵니다.
사무엘상하는 기둥을 세웁니다. 백성이 왕을 달라 하고, 사울이 세워졌다 무너지고, 다윗이 그 자리에 섭니다. 성경 전체에서 손꼽히는 약속 하나가 이 책 한가운데 놓입니다.
열왕기상하는 그 나라가 갈라지고 기울어 마침내 무너지는 기록입니다. 남과 북을 합해 마흔 명 가까운 왕이 지나가는데, 왕이 바뀔 때마다 거의 같은 문장이 되풀이됩니다.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역대상하는 같은 역사를 다시 씁니다. 왜 같은 이야기를 두 번 적었을까. 읽는 사람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열왕기는 무너지는 것을 보는 사람들에게, 역대기는 돌아와 다시 세우려는 사람들에게 쓰였습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다시 세우는 이야기입니다. 성전을 다시 짓고 성벽을 다시 쌓습니다. 처음 것만큼 크지 않았고, 옛것을 본 노인들은 울었습니다.
에스더는 돌아가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서 일어난 일입니다. 이 책에는 하나님이라는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름이 불리지 않는 자리에서도 일이 되어 가는 것을 보여 줍니다.
열두 권을 따로 놓으면 정복과 혼란과 왕조와 포로와 귀환이 저마다 다른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성경 5부 구조 안에 놓으면 한 가지 일입니다. 기초 위에 뼈대를 올리고, 그 뼈대가 얼마를 견디는지 재고, 내려앉은 자리에서 다시 세우는 일입니다. 열두 권이 그렇게 골조 한 판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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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기서 또 손을 놓는가
제1부에서 멈추는 자리가 레위기라면, 제2부에서 멈추는 자리는 왕들의 이름입니다.
낯선 이름이 줄지어 나옵니다. 아비얌, 아사, 여호사밧, 여호람, 아하시야. 누가 남쪽이고 누가 북쪽인지 헷갈리기 시작하면 그다음부터는 글자만 지나갑니다. 역대상은 아예 첫 아홉 장이 족보입니다. 이름과 이름과 이름입니다.
그리고 문장까지 되풀이됩니다.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이 한 줄이 왕이 바뀔 때마다 다시 나옵니다.
여기서 대개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건 그냥 옛날 왕조 기록이구나. 건너뛰어도 되겠구나.
저도 오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이 바뀐 것은 성경을 다시 읽어서가 아니라 옛날에 그리던 도면을 떠올리면서였습니다.
제도판 앞에서 배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도면이 지루하면 그 건물은 대체로 잘 서 있다는 것입니다. 층마다 기둥 자리가 달라지고 보의 간격이 제각각인 도면은 보기에는 재미있지만, 그런 건물은 무게가 어디로 가는지를 아무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골조가 그렇습니다.
기둥 하나가 무엇을 견디는지는 그 기둥만 보아서는 모릅니다. 같은 기둥이 열 층에 걸쳐 같은 자리에 섰을 때 비로소 이 건물이 무엇을 견디는지가 나옵니다. 한 번은 우연이고, 되풀이는 성질입니다.
사사기의 네 마디가 열두 번 돌고, 왕들의 한 문장이 마흔 번 가까이 되풀이되는 것은 편집이 게을러서가 아닙니다. 사람이 기초 위에서 혼자 서지 못한다는 것을 한 번으로는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 세대의 실패는 그 세대의 사정으로 설명됩니다. 열 세대가 같은 자리에서 넘어지면 그것은 사정이 아니라 구조입니다.
성경 5부 구조로 보면 이 구간이 무엇을 하는지 분명해집니다. 제2부는 새 이야기를 더하는 자리가 아니라, 제1부에서 놓은 기초가 실제 하중을 얼마나 받는지 재는 자리입니다.
당신 앞에 펼쳐진 성경 66권이 한 채의 건물로 보이십니까.
그렇게 보면 왕들의 이름은 건너뛸 목록이 아니라 하중 시험의 기록입니다.
그리고 시험의 결과가 열두 권 끝에 남습니다. 이 기초 위에 사람이 왕을 세워 보았는데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가장 마음에 합한 왕도 넘어졌고, 가장 지혜로운 왕의 대에서 나라가 갈라졌습니다. 뼈대는 다 올라갔는데 그 안에 들어와 살 사람이 아직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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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조가 무너져도 남는 선
이 구간 한가운데 약속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다윗이 성전을 짓겠다고 했을 때 하나님은 그것을 막으시고 대신 다른 것을 주십니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사무엘하 7:16])
집이라는 말이 두 가지로 쓰였습니다. 다윗이 짓겠다고 한 집은 건물이고, 하나님이 지어 주시겠다고 하신 집은 혈통입니다. 돌로 된 집을 올리겠다는 사람에게, 사람으로 된 집을 세워 주겠다고 답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약속은 곧 시험에 듭니다. 열왕기하 마지막 장에서 성전이 불타고 성벽이 헐리고 왕은 사슬에 묶여 끌려갑니다. 영원히 견고하리라던 왕위가 거기서 끝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열왕기하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마지막 네 절이 남아 있습니다. 끌려간 왕 여호야긴이 삼십칠 년 만에 옥에서 나와 바벨론 왕의 상에서 밥을 먹었다는 기록입니다.
나라도 없고 성전도 없고 왕좌도 없습니다. 다만 다윗의 자손 하나가 아직 살아서 밥을 먹고 있다는 것, 그 한 줄로 열두 권이 닫힙니다.
골조는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면에 그어진 한 선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오랜 뒤에 신약이 이렇게 시작합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마태복음 1:1]). 사사기의 되풀이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왕들의 목록이 왜 그렇게 길었는지가 그 한 줄에서 만납니다. 사람 가운데 그 자리를 감당한 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경 5부 구조의 제3부는 이 골조 안으로 들어갑니다. 뼈대가 섰으면 그 안에서 사람이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견디며 사는가. 시가서 다섯 권이 그 안쪽을 보여 줍니다.
골조가 다 올라갔을 때 아직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살 자리는 이미 다 잡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