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단계 보화를 발견하고 소유하는 천국사람: 기쁨이 값을 가볍게 합니다

3단계 보화를 발견하고 소유하는 천국사람은 천국사람 6단계의 여섯 면 가운데 하나이며, 밭에 감추인 것이 마침내 드러나는 자리입니다. 마태복음의 세 비유, 곧 보화를 발견한 사람 · 진주를 구하는 장사 ·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 이 셋이 자리를 맡습니다. 여기서 정해지는 것은 얼마를 내놓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보았느냐이고, 본 사람에게는 값이 가벼워집니다.

축척이 적혀 있지 않은 도면은 읽을 수 없습니다

도면에는 반드시 한구석에 축척이 적혀 있습니다. 백분의 일, 오십분의 일 같은 것입니다.

이 한 줄이 없으면 도면은 그림일 뿐입니다. 종이 위의 삼 센티미터가 삼 미터인지 삼십 미터인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선의 길이는 그대로인데 무엇에 견주느냐로 뜻이 전부 달라집니다.

그런데 축척은 그림 안에 그려져 있지 않습니다. 선이 아니라 글자로, 구석에 작게 적혀 있을 뿐입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자리에 있으면서 도면의 모든 선을 붙들고 있습니다.

천국사람 6단계는 예수님이 마태복음에서 말씀하신 열아홉 비유를 여섯 자리에 놓고 읽는 틀입니다. 그중 3단계가 보화를 발견하고 소유하는 자리입니다. 2단계에서 씨가 자랐다면 여기서는 그 흙이 무엇을 품고 있었는지가 드러납니다. 비유 셋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 자리를 오해하는 가장 흔한 방식은 소유한다는 말을 값 치르기로 읽는 것입니다. 소유를 다 팔았다는 문장이 그렇게 들립니다. 얼마를 내놓아야 하는가. 어디까지 포기해야 하는가. 그렇게 읽으면 이 단계는 내내 빼기만 하는 자리가 됩니다.

그런데 두 비유 어디에도 값을 아까워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본문은 오히려 기뻐하며 팔았다고 적습니다.

값이 달라진 것이 아닙니다. 견주는 대상이 달라진 것입니다.

축척입니다.

그리고 축척이 그렇듯이, 여기는 한 번 지나고 마는 곳이 아닙니다. 축척은 한 번 적히고 나면 마지막 선까지 그대로 적용됩니다. 4단계에서 무엇을 미리 준비할지, 5단계에서 무엇을 내주고도 아깝지 않을지가 전부 이 한 줄에 매여 있습니다. 이 줄을 지우면 나머지 다섯 면의 치수를 읽을 수 없습니다.

세 비유가 맡은 세 가지 일

천국사람 6단계에서 3단계에 속한 비유는 셋입니다. 그런데 셋이 같은 일을 하지는 않습니다.

첫째는 보화를 발견한 사람입니다([마태복음 13:44]). 한 절로 끝나는 비유입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어떤 사람이 발견합니다. 찾아다니다 만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본문은 이렇게 잇습니다.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습니다. 아까워하며 팔았다고 하지 않습니다. 기뻐하며 팔았다고 합니다.

둘째는 진주를 구하는 장사입니다([마태복음 13:45-46]). 앞의 사람과 정반대입니다.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꾼입니다. 평생 그것만 찾아다닌 사람입니다. 그러다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고,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삽니다. 우연히 만난 사람과 평생 찾던 사람, 들어온 문은 정반대인데 치른 값은 똑같습니다. 둘 다 전부입니다.

셋째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입니다([마태복음 18:15-20]). 열아홉 가운데 이 하나만 천국은 마치라는 말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형제가 잘못하거든 가서 단둘이 말하고, 듣지 않거든 한둘을 더 데려가고, 그래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그 대목 한가운데 이 말씀이 놓입니다.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발견한 보화를 지키는 일이 관계를 지키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셋을 따로 놓으면 우연히 얻은 이야기와 장사 이야기와 교회의 규례입니다. 그런데 이어 놓으면 한 흐름입니다. 발견하고, 사고, 지킵니다. 그리고 셋 다 전부라는 말이 걸려 있습니다. 앞의 둘은 가진 전부를 내놓고, 셋째는 한 사람도 잃지 않으려고 세 번까지 찾아갑니다. 셋이 그렇게 보화 하나가 손에 들어오기까지를 채웁니다.

왜 오래 다닌 사람이 여기서 막히는가

마태복음 13장에서 보화 비유는 한 절이고 진주 비유는 두 절입니다. 세 절 안에 전 재산을 파는 사람이 둘 나옵니다.

그 두 사람 앞에서 오래 다니신 분들이 멈춥니다.

교회를 오래 다니면 실제로 낸 것이 쌓입니다. 주일마다 드린 시간, 헌금, 맡은 일, 남들 쉬는 날의 봉사. 낸 것은 셀 수 있는데 받은 것은 잘 세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느 날 이런 마음이 올라옵니다. 나는 낼 만큼 냈다.

그 마음이 올라오는 순간 비유가 계산서로 읽힙니다. 전부를 팔았다는 문장이 더 내라는 요구로 들립니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은 값을 세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은 기뻐하며 팔았고, 다른 한 사람은 평생 그것만 찾다가 만났습니다. 둘 다 무엇을 얻는지를 먼저 보았고, 보고 나니 내놓는 일이 손해로 계산되지 않았습니다.

장로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오래 섬기셨고 교회 일에 부지런하셨습니다. 그런데 가끔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다른 성도들 앞에서 큰 소리가 나왔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 큰 소리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봉사한 햇수였을까, 신앙의 연조였을까, 아니면 밖에서 가지신 자리였을까. 그것들이 안에 쌓여 다른 사람보다 내가 앞서 있다는 마음이 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받은 것을 세는 사람에게서는 그런 소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낸 것을 세는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아까움이 남아 있다면 아직 덜 드린 것이 아닙니다. 아직 다 보지 못한 것입니다.

천국사람 6단계로 보면 그 자리가 어디인지 분명해집니다. 3단계는 값을 치르는 자리가 아니라 값이 다시 매겨지는 자리입니다.

당신이 지금 서 있는 자리는 오르다 만 계단입니까, 아직 다 돌려 보지 않은 면입니까.

그 물음 앞에서 아까운 마음은 신앙이 모자란 표시가 아닙니다. 아직 축척을 읽지 못한 표시입니다.

그분이 먼저 기쁨 때문에 값을 치르셨습니다

기쁨이 값을 가볍게 한다는 것은 사람이 마음을 고쳐먹는 일이 아닙니다.

히브리서를 쓴 사람이 예수님을 가리키며 이렇게 적었습니다.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히브리서 12:2])

값이 가벼웠다는 말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값입니다. 그런데 그 값을 치른 이유가 두려움이나 의무가 아니라 그 앞에 있는 기쁨이었다고 적습니다. 보화를 발견한 사람이 기뻐하며 소유를 다 판 것과 같은 자리에 같은 낱말이 서 있습니다.

그러니 이 단계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더 많이 내놓는 결심이 아닙니다. 무엇을 보았느냐입니다. 본 사람에게 값은 저절로 가벼워지고, 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아무리 결심해도 무겁습니다.

셋째 비유가 왜 이 자리에 들어와 있는지도 여기서 보입니다. 보화를 얻은 다음에 그것을 잃는 가장 흔한 길이 사람과 틀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형제에게 세 번까지 가라고 하셨습니다. 값을 치르고 얻은 것을 값싸게 잃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천국사람 6단계의 4단계는 미리 준비하는 자리입니다. 보화를 손에 넣은 사람에게 남은 물음은 하나입니다. 이것을 언제까지 지녀야 하는가. 주인이 돌아오실 때까지입니다.

밭을 샀을 때 아직 보화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밭이 무엇을 품고 있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