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단계 자라고 변화하는 천국사람: 씨는 보이지 않을 때 가장 많이 자랍니다

2단계 자라고 변화하는 천국사람은 천국사람 6단계의 여섯 면 가운데 하나이며, 뿌려진 씨가 자라기 시작하는 자리입니다. 마태복음의 세 비유, 곧 네 가지 밭 · 겨자씨, 가장 작은 씨 · 누룩, 전부 부풀게 함이 이 자리를 맡습니다. 셋 다 흙 아래와 반죽 속을 말하므로, 이 단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대부분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도면에는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는 선이 따로 있습니다

도면에는 두 가지 선이 있습니다. 실선과 파선입니다.

실선은 눈에 보이는 모서리를 그립니다. 파선은 물체에 가려 보이지 않는 모서리를 그립니다. 이 파선을 숨은선이라고 부릅니다.

도면을 처음 보는 사람은 파선을 지나칩니다. 흐릿하게 그려져 있으니 덜 중요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물건 속에 뚫린 구멍은 전부 이 선입니다. 빼고 만들면 겉모양만 같고 속은 막힌 것이 나옵니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과 없다는 것은 다릅니다. 도면은 그 둘을 다른 선으로 구별해 그립니다.

천국사람 6단계는 예수님이 마태복음에서 말씀하신 열아홉 비유를 여섯 자리에 놓고 읽는 틀입니다. 그중 2단계가 자라고 변화하는 자리입니다. 1단계에서 눈이 열렸다면 여기서는 씨가 자라기 시작합니다. 비유 셋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 자리를 오해하는 가장 흔한 방식은 자란다는 말을 눈에 보이는 변화로 읽는 것입니다. 달라진 습관, 늘어난 봉사, 뜨거워진 마음. 그런 것이 눈에 띄지 않으면 자라지 않은 것으로 칩니다. 그래서 다닌 햇수만 쌓이고 달라진 것은 없어 보여 조용히 낙심합니다.

그런데 이 단계에 속한 세 비유는 하나같이 눈이 닿지 않는 자리를 말합니다.

흙 아래와 반죽 속입니다.

그리고 숨은선이 그렇듯이, 여기는 한 번 지나고 마는 곳이 아닙니다. 숨은선은 물체를 돌려놓으면 실선이 됩니다. 같은 모서리인데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실선이 되기도 하고 파선이 되기도 합니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자리가 바뀌는 것입니다. 4단계에서 준비하고 있을 때에도, 6단계에서 결산 앞에 섰을 때에도 자라는 일은 멈추지 않습니다. 다만 그때는 파선으로 그려져 있을 뿐입니다.

세 비유가 맡은 세 가지 일

천국사람 6단계에서 2단계에 속한 비유는 셋입니다. 그런데 셋이 같은 일을 하지는 않습니다.

첫째는 네 가지 밭입니다([마태복음 13:18-23]). 예수님이 뜻을 직접 풀어 주신 몇 안 되는 비유입니다. 길가와 돌밭과 가시떨기와 좋은 땅. 뿌려진 씨는 넷 다 같습니다. 다른 것은 밭입니다. 그리고 열매를 맺는 좋은 땅 안에서도 백 배와 육십 배와 삼십 배로 갈립니다. 같은 씨가 같은 좋은 땅에 떨어졌는데 배수가 다릅니다.

둘째는 겨자씨입니다([마태복음 13:31-32]).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 자란 뒤에는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입니다. 작은 것이 큰 것이 된다는 말은 쉽게 들립니다. 그런데 이 비유에서 정작 긴 것은 처음과 끝 사이입니다. 그 사이 내내 씨는 땅속에 있습니다.

셋째는 누룩입니다([마태복음 13:33]). 한 절짜리 비유입니다. 여자가 누룩을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했습니다. 서 말이면 약 스물두 리터입니다. 한 집 식구가 하루 먹을 양이 아닙니다. 그런데 누룩은 반죽을 밖에서 늘리지 않습니다. 안에서 바꿉니다. 넣은 사람도 그 순간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셋을 따로 놓으면 밭 이야기와 나무 이야기와 부엌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어 놓으면 한 흐름입니다. 셋 다 눈이 닿지 않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을 말합니다. 첫째는 흙 아래에서 씨가 무엇을 만나는지를, 둘째는 그 아래에서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를, 셋째는 그 일이 결국 전부를 바꾼다는 것을 말합니다. 셋이 그렇게 보이지 않는 한 자리를 채웁니다.

왜 오래 다닌 사람이 여기서 막히는가

마태복음 13장 쉰여덟 절 가운데 누룩 비유는 한 절입니다. 그 한 절이 반죽 전체를 말합니다. 그리고 네 가지 밭 가운데 열매를 맺는 것은 하나입니다.

그 하나라는 숫자 앞에서 오래 다니신 분들이 멈춥니다.

이 비유를 읽으면 누구나 자기를 판정하게 됩니다. 나는 길가인가, 돌밭인가, 가시떨기인가. 좋은 땅이라고 선뜻 답하는 분은 드뭅니다. 자기를 알수록 그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판정이 굳어집니다. 나는 원래 이런 밭이라고. 뜨거워지지 않는 사람이라고. 십 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고.

그런데 이 비유는 밭을 판정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밭은 사람이 갈 수 있습니다. 돌은 골라낼 수 있고 가시는 뽑을 수 있습니다. 판정은 밭을 그대로 두지만, 가는 일은 밭을 바꿉니다.

집사님 한 분이 그랬습니다. 늘 자신 없어 하시고 어딘가 주눅이 들어 계셨습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것과 자라 온 자리가 다르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시고, 어디선가 정해진 신자의 기준 하나를 놓고 자기는 거기에 못 미친다고 여기셨습니다. 우리가 흔히 체면이라 부르는 것, 자기 생각보다 남의 눈을 먼저 살피는 그 오랜 버릇이 신앙 안에서도 그대로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곁에서 보기에는 달랐습니다. 그분은 성경을 꾸준히 읽고 계셨습니다. 몇 해가 지나도록 한 번도 놓지 않으셨습니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았는데, 땅속의 씨앗이 뿌리를 깊이 내리며 때를 기다리듯 그 자리에서 자라고 계셨습니다.

자란 표시가 없다는 것과 자라지 않는다는 것은 다릅니다. 씨가 땅속에 있는 동안 밖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동안 뿌리가 내립니다.

천국사람 6단계로 보면 그 자리가 어디인지 분명해집니다. 2단계는 눈에 띄는 변화를 내놓아야 하는 자리가 아니라, 뿌리가 내리느라 겉이 조용한 시기입니다.

당신이 지금 서 있는 자리는 오르다 만 계단입니까, 아직 다 돌려 보지 않은 면입니까.

그 물음 앞에서 조용한 때는 자라지 않은 때가 아닙니다.

그분이 그 원리를 사셨습니다

씨가 보이지 않는 데서 자란다는 것을 예수님은 말씀으로만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를 앞두신 어느 날, 헬라 사람 몇이 예수를 뵙고자 한다는 말이 전해집니다. 그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은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곧바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 12:24])

씨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당신 자신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되셨습니다. 땅에 묻히셨고, 사흘 동안 아무도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무덤 밖에서 보면 끝난 일이었습니다. 겨자씨가 땅속에 있던 그 시간과 같은 자리입니다.

그러니 보이지 않는 동안에도 자라고 있다는 것은 낙심한 사람을 달래는 말이 아닙니다. 그분이 실제로 걸으신 길이고, 우리가 그 길 위에 있는 것입니다.

첫째 비유의 씨가 무엇인지도 여기서 다시 읽힙니다. 예수님은 그 씨를 천국의 말씀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다는 것을 요한이 복음서 첫 장에 적어 두었습니다.

천국사람 6단계의 3단계는 보화를 발견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그 보화도 밭에 감추여 있습니다. 씨가 묻혔던 그 흙입니다. 자라는 일이 있었던 자리에서 발견도 일어납니다.

씨가 땅에 떨어졌을 때 아직 아무것도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올라올지는 이미 그 씨 안에 들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