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부 완공과 입주: 건물은 사람이 들어와야 끝납니다

제5부 완공과 입주는 마태복음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스물일곱 권이며, 성경 5부 구조에서 앞의 네 부가 향해 온 자리입니다. 약속된 분이 오시고, 값이 치러지고, 사람들이 그 안으로 들어갑니다. 성경은 완공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입주로 끝납니다.

준공검사는 끝이 아닙니다

공사가 다 끝나면 검사를 받습니다. 도면대로 지어졌는지, 안전한지를 확인하고 서류에 도장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날 그 건물은 아직 빈 건물입니다.

건물이 진짜로 끝나는 날은 따로 있습니다. 사람이 짐을 들고 들어와 불을 켜고 밥을 짓는 날입니다.

그날이 되어야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드러납니다. 창을 그 높이에 낸 이유도, 손잡이를 그쪽에 단 이유도, 아침 볕이 거기까지 들도록 방향을 잡은 이유도 사람이 살기 시작해야 알게 됩니다.

성경 5부 구조에서 제5부 완공과 입주는 마태복음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스물일곱 권입니다. 이백예순 장으로 다섯 부 가운데 가장 깁니다.

제4부는 사백 년의 침묵으로 끝났습니다. 도면은 다 그려졌는데 공사가 멈춰 있던 시간입니다.

제5부는 그 침묵이 깨지는 자리에서 시작합니다.

스물일곱 권이 하는 네 가지 일

복음서 넷은 오신 분을 기록합니다. 같은 분을 네 사람이 각각 다른 자리에서 봅니다.

한 물건을 도면 한 장으로 다 그릴 수는 없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본 것과 옆에서 본 것과 잘라서 속을 보인 것을 따로 그려 놓아야 그것이 어떻게 생긴 물건인지가 나옵니다. 어느 한 장이 더 정확한 것이 아닙니다. 넷이 함께 있어야 입체가 됩니다.

마태는 약속된 왕으로, 마가는 일하시는 종으로, 누가는 사람들 사이의 사람으로, 요한은 태초부터 계신 분으로 그립니다.

사도행전 한 권은 문이 열리는 기록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한 것이 유대와 사마리아를 지나 땅끝까지 갑니다. 건물이 다 지어졌는데 입주할 사람이 아직 밖에 있으니, 이 책은 사람들을 데려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끝이 닫히지 않습니다. 마지막 절에서 바울이 로마에서 여전히 가르치고 있는 중이고, 이야기는 매듭지어지지 않은 채 멈춥니다. 입주가 아직 진행 중이기 때문입니다.

서신 스물한 권은 입주 안내입니다. 들어온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사는가. 다투면 어떻게 하는가, 돈은 어떻게 나누는가, 앞서 들어온 사람과 나중에 들어온 사람이 어떻게 한자리에 있는가. 이 스물한 권이 대부분 편지인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문제가 생긴 집에 답장을 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신에는 사람 이름이 유난히 많이 나옵니다. 바울이 편지 끝에서 안부를 전하는 이름이 스무 명을 넘는 자리도 있습니다. 사람이 들어와 사는 집의 기록이라 이름이 남습니다.

요한계시록 한 권은 마지막 도면입니다. 이 건물이 끝내 어떤 모습이 되는지를 보여 줍니다. 성경 5부 구조가 다섯 부로 쌓아 온 것이 여기서 한 장에 담깁니다.

네 가지를 이어 놓으면 한 흐름입니다. 오시고, 문이 열리고, 들어와 살고, 끝을 봅니다.

여기서는 앞을 잊고 읽습니다

앞의 네 부에는 각각 함정이 있었습니다. 제1부는 레위기에서 멈추는 자리, 제2부는 왕들의 이름에서 지루해지는 자리, 제3부는 아는 시편만 골라 읽는 자리, 제4부는 길을 잃는 자리입니다.

제5부의 함정은 그중 어느 것도 아닙니다.

여기서는 아무도 멈추지 않고 지루해하지도 않습니다. 읽기 쉽고 은혜가 됩니다. 그래서 많은 분이 신약만 읽습니다. 성경을 여러 번 읽으셨다는 분께 어디를 읽으셨느냐고 여쭈면 대개 신약입니다.

그런데 신약의 거의 모든 문장이 앞의 네 부를 딛고 서 있습니다.

어린 양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제1부의 유월절 밤을 모르면 그냥 순한 짐승입니다. 대제사장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레위기를 모르면 그냥 높은 사제입니다.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제2부의 그 약속을 모르면 그냥 족보의 한 줄입니다.

히브리서는 특히 그렇습니다. 성막과 제사와 대제사장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거의 읽히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책에는 구약을 직접 인용한 자리가 거의 없는데, 거의 모든 절이 구약을 되울립니다.

기초를 딛지 않고 오층에 들어와 사는 것과 같습니다. 사는 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다만 이 방이 왜 이 자리에 있는지를 끝내 모릅니다.

삼십 년 동안 성경공부를 인도하면서 가장 자주 들은 말이 있습니다. 아, 그게 거기서 나온 말이었군요. 신약을 오래 읽어 오신 분이 구약에서 그 자리를 처음 만났을 때 하시는 말입니다. 새것을 배워서 나오는 말이 아니라, 이미 알던 것이 어디에 놓여 있었는지를 알게 되어 나오는 말입니다.

성경 5부 구조가 하는 일이 그것입니다. 지금 서 있는 이 층 아래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당신 앞에 펼쳐진 성경 66권이 한 채의 건물로 보이십니까.

그렇게 보면 신약은 성경의 좋은 부분이 아니라, 앞의 예순한 권이 떠받치고 있는 꼭대기 층입니다.

그래서 한 가지만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다음번에는 제1부부터 펴 보십시오.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미 아시는 신약이 다르게 읽히기 때문입니다.

그 집에는 성전이 없었습니다

제1부에서 성막을 지으라 하실 때 하나님이 밝히신 목적이 하나 있었습니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하리라([출애굽기 25:8]).

그 한 줄이 성경 마지막 권에서 다시 나옵니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요한계시록 21:3])

같은 말입니다. 천막 하나를 짓게 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예순여섯 권 끝에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기초에 새겨 두신 목적이 완공된 건물에서 확인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에 관해 한 가지가 적혀 있습니다. 성 안에서 성전을 보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주 하나님과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시기 때문이라고 합니다([요한계시록 21:22]).

성전을 향해 예순여섯 권을 걸어왔는데 마지막 성에는 성전이 없습니다. 건물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만나러 갈 자리가 따로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거기 계십니다.

성경 5부 구조로 예순여섯 권을 한 채로 세워 보면 마지막에 남는 것이 그것입니다. 건물이 아니라 함께 있음입니다. 기초부터 조감도까지 그 오랜 공사가 향해 온 것이 한자리에 같이 사는 일이었습니다.

앞의 네 부에는 아직이라는 말이 계속 붙어 있었습니다. 기초를 다 놓았을 때 아직 벽 하나 서지 않았고, 골조가 다 올라갔을 때 아직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고, 실내가 다 꾸며졌을 때 아직 문이 열리지 않았고, 조감도가 다 그려졌을 때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에서 그 아직이 끝났습니다.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요한복음 19:30]).

그런데 성경은 거기서 닫히지 않습니다. 마지막 장에서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요한계시록 22:20]).

끝난 것과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을 나누어 보아야 이 두 자리가 함께 읽힙니다. 공사는 끝났습니다. 값은 다 치러졌고 문은 열렸습니다. 끝나지 않은 것은 입주입니다. 들어올 사람이 아직 다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지금 성경을 펴고 계신 자리가 그 사이입니다.

집이 다 되었을 때 우리는 아직 짐을 다 옮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문으로 들어갈지는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