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단계 미리 준비하는 천국사람: 준비는 빌릴 수 없습니다

4단계 미리 준비하는 천국사람은 천국사람 6단계의 여섯 면 가운데 하나이며, 뒷날 쓸 것을 지금 갖추기 시작하는 자리입니다. 마태복음의 세 비유, 곧 그물 같은 사람 ·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 · 열 처녀, 이 셋이 자리를 맡습니다. 셋 다 지금 해 두지 않으면 나중에 할 수 없는 일을 말하고, 그 일은 다른 사람에게서 빌려 올 수도 없습니다.

조립하고 나면 안쪽에 손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물건을 만들 때 반드시 먼저 해 두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안쪽에 낼 구멍이 그렇습니다. 겉판을 덮기 전에 뚫어야 합니다. 덮고 나면 손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도면에는 그 구멍을 어느 차례에 내야 하는지가 적혀 있습니다. 나중에 하기로 미룰 수가 없습니다. 어려워서가 아니라 순서가 지나가면 길이 막히기 때문입니다.

현장에서 이것을 놓치면 방법이 하나뿐입니다. 다시 뜯는 것입니다.

천국사람 6단계는 예수님이 마태복음에서 말씀하신 열아홉 비유를 여섯 자리에 놓고 읽는 틀입니다. 그중 4단계가 미리 준비하는 자리입니다. 3단계에서 보화를 손에 넣었다면 여기서는 그것을 언제까지 어떻게 지니는지가 정해집니다. 비유 셋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 자리를 오해하는 가장 흔한 방식은 준비를 각오로 읽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잡고 결심을 새로 하면 준비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열 처녀 비유가 묻는 것은 결심이 아니라 그릇에 담아 온 기름입니다. 결심은 그 자리에서 할 수 있고 기름은 그 자리에서 만들 수 없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남의 것으로 되지 않습니다.

미련한 다섯이 슬기로운 다섯에게 기름을 나눠 달라고 했을 때 돌아온 대답은 인색함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러 간 사이에 문이 닫혔습니다. 빌릴 수 없었던 진짜 이유는 그때가 이미 늦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를 구별해야 합니다.

먼저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것과 단계에 순서가 있다는 것은 다릅니다.

차례는 물건을 만드는 일에 있지 도면의 면에 있지 않습니다. 도면은 여섯 면을 한꺼번에 펼쳐 보입니다. 4단계도 그렇습니다. 준비는 언제나 오늘 하는 일이라, 1단계에서 눈이 열리는 동안에도 6단계에서 결산 앞에 서는 동안에도 이 면은 꺼지지 않습니다.

세 비유가 맡은 세 가지 일

천국사람 6단계에서 4단계에 속한 비유는 셋입니다. 그런데 셋이 같은 일을 하지는 않습니다.

첫째는 그물 같은 사람입니다([마태복음 13:47-50]). 바다에 친 그물이 각종 물고기를 모읍니다. 가려내는 일은 그물을 칠 때 하지 않습니다. 가득 차서 물가로 끌어낸 뒤에 앉아서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가려내는 때가 아니라 치는 때입니다. 준비하는 사람이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무엇을 하지 않을지입니다.

둘째는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입니다([마태복음 13:51-52]). 이름이 그냥 서기관이 아닙니다. 제자 된 서기관입니다. 옛 지식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새로 배우는 자리에 선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두 절로 끝나는 비유입니다.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은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곳간에서 내온다는 말이 이 비유의 전부입니다. 꺼낼 때 채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쌓아 둔 것이 있어야 내올 것이 있습니다. 무엇을 배우는 것은 나중에 그것을 내오기 위해서입니다.

셋째는 열 처녀입니다([마태복음 25:1-13]). 열세 절 동안 벌어지는 일인데, 열 사람이 다 등을 들고 있었습니다. 등이 없어서 못 들어간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른 것은 그릇에 따로 담아 온 기름이었고, 그 그릇을 챙긴 사람은 다섯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가 더 있습니다. 열이 다 졸며 잤습니다. 깨어 있으라는 말씀으로 끝나는 비유인데 정작 슬기로운 다섯도 잤습니다. 갈린 자리는 그날 밤에 깨어 있었느냐가 아니라 그 전에 챙겨 두었느냐였습니다.

셋을 따로 놓으면 어부 이야기와 학자 이야기와 혼인 잔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어 놓으면 한 흐름입니다. 셋 다 지금 하는 일과 나중에 드러나는 일을 갈라 놓습니다. 그물은 지금 치고 가려냄은 나중이며, 곳간은 지금 채우고 꺼냄은 나중이며, 기름은 지금 담고 쓰임은 나중입니다. 그리고 셋 다 나중에 가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셋이 그렇게 오늘 해 두어야 할 몫 하나를 채웁니다.

왜 오래 다닌 사람이 여기서 막히는가

열 사람 가운데 다섯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등을 든 사람은 열이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오래 다니신 분들이 멈춥니다.

교회를 오래 다니면 등이 생깁니다. 아는 것이 쌓이고, 자리를 맡고, 사람들이 알아봅니다. 그러면 준비가 된 것처럼 보입니다. 등을 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열 사람이 다 등을 들고 있었다는 그 한 줄이 무서운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가 더 겹칩니다.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니신 분들에게 특히 그렇습니다.

부모의 기도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어머니가 새벽마다 나가셨고, 그 기도로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다고 여깁니다. 그것은 사실이고 감사할 일입니다. 그런데 그 기도가 내 그릇의 기름은 아닙니다.

배우자의 신앙도, 부모의 신앙도, 목사의 기도도 그 자리에서는 건네지지 않습니다. 인색해서가 아니라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저 자신이 늦게 알았습니다.

사람은 공동체 안에서 삽니다. 태어나면 가족이 있고, 자라면 친구가 있고, 나가면 사회가 있고, 믿으면 교회가 있습니다. 그렇게 늘 누군가와 함께 있다 보니 혼자 서는 일이 오히려 드뭅니다.

제가 그것을 알게 된 것은 쉰 중반이 지나서였습니다. 시작은 건강이었습니다. 몸이 무너지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타고난 것이 특별한 몇 사람을 빼면 결국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하나를 더 알았습니다. 공동체는 얼마간 도와줄 수 있어도 끝까지 책임지지는 못한다는 것을.

신앙도 같았습니다. 성도들과 함께 은혜를 받고 함께 힘을 얻지만, 하나님 앞에 설 때는 혼자 섭니다.

빌릴 수 없다는 말은 혼자 힘으로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누구도 대신 서 줄 수 없는 자리가 있다는 뜻입니다.

천국사람 6단계로 보면 그 자리가 어디인지 분명해집니다. 4단계는 각오를 새로 하는 자리가 아니라, 남이 해 줄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자리입니다.

당신이 지금 서 있는 자리는 오르다 만 계단입니까, 아직 다 돌려 보지 않은 면입니까.

그 물음 앞에서 등을 들고 있다는 것은 아직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비하는 동안 그분도 예비하고 계십니다

열 처녀 비유는 문이 닫히는 장면으로 넘어갑니다.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마태복음 25:10])

여기서 멈추면 이 비유는 무섭기만 한 이야기가 됩니다. 그런데 한 낱말을 따라가면 다른 것이 보입니다. 예비라는 말입니다.

예비한 것은 처녀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잔치는 그들이 차린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준비한 것은 등과 기름이고, 문 안쪽의 상은 신랑이 차려 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한복음 14:2-3])

예비라는 말이 양쪽에 나란히 놓입니다. 우리가 기름을 예비하는 동안 그분은 자리를 예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어느 쪽이 먼저인지가 중요합니다. 그분이 먼저 예비하러 가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비할 이유가 생긴 것이지, 우리가 잘 준비해서 그 자리를 얻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기름을 빌릴 수 없다는 말이 그래서 절망이 아닙니다. 빌릴 수는 없어도 살 수는 있고, 그 상점은 아직 닫히지 않았습니다.

천국사람 6단계의 5단계는 주인처럼 사랑하는 자리입니다. 준비를 마친 사람에게 남는 것이 있습니다. 신랑이 더디 오는 그 시간입니다. 그것을 무엇으로 채우느냐가 다음 면입니다.

그릇에 기름을 담았을 때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실 분이 누구인지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