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단계 천국 비밀을 깨닫는 천국사람: 문은 위가 아니라 아래에서 열립니다

1단계 천국 비밀을 깨닫는 천국사람은 천국사람 6단계의 여섯 면 가운데 하나이며, 천국의 문이 열리는 자리입니다. 마태복음의 세 비유, 곧 천국 비밀을 아는 자 · 보는 눈, 듣는 귀의 복 · 천국에서 큰 사람이 이 자리를 맡습니다. 여기서 정해지는 것은 얼마나 아느냐가 아니라 어디서 보느냐이고, 그 눈높이는 나머지 다섯 면을 볼 때에도 그대로 남습니다.

눈높이를 먼저 정해야 그림이 그려집니다

투시도를 그릴 때 가장 먼저 긋는 선이 있습니다. 눈높이선입니다.

종이 위에 가로로 한 줄을 긋고, 보는 사람의 눈이 그 높이에 있다고 정합니다. 그 선을 어디에 두느냐가 그림 전체를 정합니다. 위로 올리면 내려다보게 되고, 아래로 내리면 우러러보게 됩니다. 같은 대상이고 치수도 그대로인데, 선 하나를 어디에 그었느냐로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것은 한 번 긋고 잊는 선이 아닙니다. 그림을 다 그릴 때까지 종이 위에 남아 있습니다. 도중에 지우면 그때까지 그린 것이 전부 어긋납니다.

천국사람 6단계는 예수님이 마태복음에서 말씀하신 열아홉 비유를 여섯 자리에 놓고 읽는 틀입니다. 천국 비밀을 깨닫고, 자라고, 보화를 발견하고, 미리 준비하고, 주인처럼 사랑하고, 결산 앞에 섭니다. 그중 1단계가 천국 비밀을 깨닫는 자리이고 비유 셋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 자리를 오해하는 가장 흔한 방식은 깨닫는다는 말을 지식으로 읽는 것입니다. 천국의 비밀이라는 말이 그렇게 들립니다. 더 배우고 더 올라가면 언젠가 열릴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더 하고 책을 더 읽고, 그러고도 천국이 여전히 멀면 아직 덜 배웠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정해지는 것은 얼마나 아느냐가 아닙니다.

어디서 보느냐입니다.

그리고 눈높이선이 그렇듯이, 여기는 한 번 지나고 마는 곳이 아닙니다. 2단계에서 씨가 자라는 동안에도, 5단계에서 주인처럼 사랑하는 동안에도 그 선은 종이 위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1단계는 지났다고 여겨 이 선을 지우면 그때까지 본 것이 전부 어긋납니다.

세 비유가 맡은 세 가지 일

천국사람 6단계에서 1단계에 속한 비유는 셋입니다. 그런데 셋이 같은 일을 하지는 않습니다.

첫째는 천국 비밀을 아는 자입니다([마태복음 13:10-17]). 제자들이 왜 비유로 말씀하시느냐고 물었을 때 나온 대답입니다. 그런데 대답이 뜻밖입니다. 비유가 어려운 것을 쉽게 풀어 주는 방법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비유는 문을 여는 말인 동시에 가르는 말입니다.

둘째는 보는 눈, 듣는 귀의 복입니다([마태복음 13:14-17]). 첫째 비유와 같은 대목 안에 겹쳐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사야를 인용하시며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눈과 귀를 말씀하시고, 곧이어 제자들 쪽으로 돌아서십니다.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더하십니다.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다. 보는 일이 실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셋째는 천국에서 큰 사람입니다([마태복음 18:1-4]). 제자들이 천국에서 누가 크냐고 물었습니다. 서열을 묻는 물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린아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서열을 물었는데 입구를 말씀하셨습니다.

셋을 따로 놓으면 서로 먼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어 놓으면 한 흐름입니다. 셋 다 누가 더 아느냐를 말하지 않습니다. 누가 받았느냐를 말합니다. 첫째에서 허락되고, 둘째에서 알아보고, 셋째에서 낮아집니다. 그리고 낮아지는 일이 마지막에 오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눈높이선은 낮게 그을수록 위가 더 보이기 때문입니다.

왜 오래 다닌 사람이 여기서 막히는가

마태복음 13장은 쉰여덟 절입니다. 그 한 장 안에 열아홉 비유 가운데 열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1단계의 두 비유가 그 장의 앞머리에 있습니다. 성경을 펴서 차례로 읽어 나가는 사람이 가장 먼저 만나는 천국 비유가 이 둘입니다.

그런데 오래 다니신 분일수록 여기서 막힙니다.

교회에 오래 앉아 있으면 천국이라는 말을 셀 수 없이 듣습니다. 듣다 보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이미 아는 것으로 넘어갑니다. 1단계는 처음 믿는 사람의 자리라고 여기고 지나갑니다.

그러다 어느 날 천국의 비밀이라는 말 앞에서 멈칫합니다. 나는 그 안에 있는가 밖에 있는가. 삼십 년을 다녔는데 천국이 여전히 죽은 뒤에 가는 어딘가로만 남아 있으면, 이 물음 앞에서 내놓을 말이 없습니다.

그리고 대개 자기를 탓합니다. 믿음이 약해서라고, 기도가 부족해서라고. 그러고는 더 열심히 하겠다고 마음먹습니다. 그 마음이 다음 주를 넘기지 못합니다.

권사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젊어서 예수를 믿고 그 뒤로 한 번도 교회를 떠나지 않으신 분입니다. 몸이 눈에 띄게 약해지시던 무렵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서부터 천국을 소망했는데, 아무래도 죽어서나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 같다고.

평생 들으신 말이 예수 믿고 천국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천국이 어떤 곳인지는 한 번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들은 것은 셀 수 없이 많은데 아는 것도 겪은 것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믿음의 양이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눈높이선을 긋지 않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서입니다.

천국사람 6단계로 보면 그 자리가 어디인지 분명해집니다. 1단계는 처음 믿는 사람만의 자리가 아니라, 나머지 다섯 면을 보는 눈의 높이가 정해지는 곳입니다.

당신이 지금 서 있는 자리는 오르다 만 계단입니까, 아직 다 돌려 보지 않은 면입니까.

그 물음 앞에서 1단계는 이미 지났다고 접어 둘 자리가 아닙니다.

문이 아래에 난 이유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8:3])

이 말씀이 조건으로만 들리면 또 하나의 짐이 됩니다. 낮아져야 들어간다니, 얼마나 낮아져야 하는지를 재게 됩니다. 그러면 낮아지는 일까지 실력이 됩니다.

그런데 이 문이 왜 아래에 났는지를 보면 순서가 달라집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에 한 대목이 있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립보서 2:6-8]).

문이 아래에 난 것은 그분이 아래로 걸어 들어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는 말씀은 문을 새로 내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미 나 있는 문이 어디에 있는지를 가리키신 것입니다. 그 문이 낮은 데 있는 이유는 그분이 거기까지 내려오셨기 때문이고, 낮아지는 일이 우리에게 가능한 이유도 그분이 먼저 그 길을 걸으셨기 때문입니다.

첫째 비유의 허락되었다는 말씀도 여기서 다시 읽힙니다. 허락은 자격을 갖춘 사람이 받아 내는 상이 아닙니다. 주시는 분이 계셔야 성립하는 말입니다.

천국사람 6단계의 2단계는 자라고 변화하는 자리입니다. 씨가 뿌려지고, 가장 작은 것이 가장 크게 되고, 보이지 않는 것이 반죽 전체를 바꿉니다. 그런데 씨가 어디에 떨어지는지를 보려면 먼저 눈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문이 열렸을 때 아직 아무것도 자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자랄지는 이미 그 눈 안에 들어와 있었습니다.